출력Chudosa에서 AI로 생성
여러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인쇄소 이웃들과 단골 손님들, 그리고 아빠를 “준호 사장님”이라 부르던 동네 분들까지,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인 이 자리, 아빠가 좋아하시던 공원 소극장에서 이렇게 마주 앉아 있으니, 마치 주말 공연 전 리허설처럼 아빠의 웃음과 발걸음 소리가 막 뒤에서 들려오는 듯합니다.
저는 아들 박지훈입니다. 아빠에게는 늘 “지훈아”였고, 저에게 아빠는 늘 “아빠”, 그리고 세상엔 “준호 사장님”이었습니다.
아빠, 박준호. 1965년 4월 17일 대구에서 태어나셔서, 대학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작은 인쇄소를 열었습니다. 2026년 1월 5일, 향년 예순. 숫자로 적으면 짧아 보이지만, 그 사이 30년 넘게 같은 동네에서 같은 간판을 지키며, 동네 상권과 함께 부풀고 줄어드는 호흡을 맞춰 온 세월이 있었습니다. 주문서 대신 웃음을 먼저 건네고, 가격표 대신 신뢰를 남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빠의 하루를 떠올리면 먼저 떠오르는 건 잉크 냄새와 종이가 지나가며 내는 사각거림입니다. 새벽에 셔터를 올리면, 제일 먼저 기계에 손을 얹고 “오늘도 부탁한다” 하시던 작은 인사. 종이가 한 장씩 맞물려 나올 때마다, 아빠는 늘 색을 확인하고 모서리를 맞추고, 조금이라도 삐뚤면 다시 잡아 돌렸습니다. 정직한 거래란 결국 정직한 한 장, 한 장의 합이라는 걸 아빠는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약속은 칼같이, 그러나 말투는 언제나 부드럽게. “내일까지 되나요?”라고 묻는 손님에게 “내일 아침에 드릴게요”라고 답하고, 밤을 새워도 약속을 어기지 않던 사람. 그리고 일이 잘못되면 “이걸로 배웠네”라고 먼저 말하며 실패를 다음 번에 쓸 수 있는 지혜로 바꾸던 사람.
우리는 종종 아빠를 “준호 사장님”으로 불러주던 동네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지역축제 안내책자를 만들 때면, “올해 표지는 산빛으로 가자” 하시고 사진기를 들고 언덕을 오르셨지요. 필름카메라를 모으고, 암실에 들어가 불을 끄고, 빨간 조명 아래서 천천히 현상액을 흔들던 손. 그 침착한 리듬은 집에서도 이어졌습니다. 김치 담그는 날이면 소금물에 배추를 담그고, 시간을 재며 뒤집고, 마치 사진의 명암을 맞추듯 간을 맞추셨습니다. 산을 오를 때는 “급하게 오르면 정상 못 본다” 하셨고, 주말 배드민턴에서는 누구랑 치든 끝나고 항상 손을 내밀어 악수하셨습니다. 아빠의 취미는 결국 하나의 공통점을 가졌습니다. 정성 들여 기다리는 법, 그리고 함께 나누는 법.
아빠는 장사꾼이기 이전에 이웃이었습니다. 주말마다 봉사 전단을 인쇄해 지역 단체에 건네며 “이거라도 도움이 되면 좋죠”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영업시간을 넘겨 문을 두드리던 학생에게 “과제 급하구나, 밥은 먹었니?”가 먼저 나왔고, 나중에야 파일을 열어보셨습니다. 사실 아빠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압니다. 아빠는 어떤 문제 앞에서도 먼저 물었습니다. “밥은 먹었니?” 사람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그 한마디가, 우리를 얼마나 버티게 했는지를.
가족의 시간이 또렷합니다. 첫 가족 캠핑. 갑자기 비가 쏟아져 텐트는 물 위에 떠다니는 섬처럼 흔들렸고, 장작은 금세 젖어 불은 꺼졌습니다. 그날 밤, 아빠는 손전등을 텐트 천장에 걸고 라면 냄비를 조심스레 끓였습니다. 라면이 다 불기 전에, 아빠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대구에서 자라며 들었던 옛날 이야기, 서울에 처음 올라왔던 날 길을 헤매던 이야기, 첫 번째로 산 중고 인쇄기가 자꾸만 종이를 먹어버리던 이야기. 빗방울이 텐트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와 라면 냄새, 그리고 아빠의 목소리. 우리는 밤새 웃었습니다. 그날, 저는 배웠습니다. 좋은 날을 만드는 건 날씨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아빠는 상황을 바꾸는 대신 분위기를 바꿨고, 그 방식으로 우리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빠의 원칙은 단순했습니다. 정직한 거래, 약속 준수, 그리고 “이웃과 함께 잘 되는 것.” 그 말은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가격 흥정을 길게 하던 노인에게 “어르신, 이건 제가 덜 받을게요. 대신 다음에 또 와요”라고 말하던 그 눈빛. 우리 집이 조금 덜 가져가도, 동네가 더 잘 되면 결국 우리 모두가 더 오래 간다고 믿던 마음. 그 마음은 사업의 방식이자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아빠의 낙천성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었습니다. 기계가 멈추는 날이면 땀을 닦고 “잘됐다, 청소부터 하자”고 하셨습니다. 갓 들어온 초보 직원이 실수로 500부를 날려도 “좋아, 그만큼 더 능숙해졌다고 치자”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날은 그것이 굳은살 같은 위로였고, 어떤 날은 진짜 구원 같은 안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우리 가족 모두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 약속을 지킬 것. 이웃과 더불어 갈 것. 그리고 힘들 때는 일단 밥을 먹을 것.
아빠의 곁에는 언제나 엄마, 최미란 씨가 계셨습니다. 아빠는 종종 말했습니다. “나는 인쇄를 하고, 너는 사람을 맞는다.” 가게 앞 카운터에서 엄마가 건네는 미소는 우리 가게의 첫 페이지였습니다. 누나, 박서현. 늘 침착하게 집안의 큰 그림을 그리던 사람. 그리고 저, 박지훈. 아빠에게는 때로 직원, 때로 제자, 그러나 결국엔 늘 아들이었습니다. 손자 도현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카메라를 세 대나 들고 와서 같은 장면을 세 번씩 찍었습니다. “디지털 하나, 필름 두 개. 순간이 다르게 나온다” 하며, 아기의 손가락을 확대해서 보여 주던 그 설렘을 잊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할 아빠의 모습은 분명합니다. 누구든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시간을 내어주던 그 등받이 같은 존재감. “밥은 먹었니?”라고 묻고, 함께 허리를 펴고 앉아 이야기를 들어 주던 그 귀. 바쁠수록 더 천천히 말하던 호흡. 나는 그런 아빠를 인생의 멘토이자 가장 큰 응원자로 기억합니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헤매던 제게, 아빠는 거창한 해답 대신 함께 박스를 나르고, 종이를 재단하고, 저녁에는 동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시켜 놓고 말했습니다. “지훈아, 사람이 쓸모 있는 순간이 행복한 거다. 네가 어디 있든,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돼라.” 그 말은 제 인생의 북극성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공원 소극장은 아빠가 사랑하던 곳입니다. 누구의 공연이든 티켓을 한 장 더 사 주고, 스태프에게 따뜻한 음료를 건네며, “이 동네가 살아 있으려면 무대가 있어야 해요”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무대 위에 서 있으니, 아빠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도 무언가를 부탁하는 듯합니다. “한 장 한 장 정성껏”, “한 사람 한 사람 정답게.” 아빠의 말투로, 조용히.
아빠는 생의 마지막까지도 누군가의 내일을 생각했습니다. 아빠의 뜻에 따라, 우리 가족은 지역 아동센터 장학기금에 일부를 기부했습니다. “배우는 일은 멈추면 안 된다”는 아빠의 오래된 신념이, 어린 친구들의 책상 위에 작은 빛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 빛은 아마 안내책자의 표지처럼, 누군가의 길을 조금 더 선명하게 밝혀 줄 것입니다.
이별 앞에서 우리는 많이 아픕니다. 그러나 아빠는 우리에게 슬픔만 남기지 않았습니다. 등산로의 완만한 오르막처럼, 쉬어갈 벤치와 주변을 볼 여유도 함께 남겼습니다. 언젠가 또 비가 쏟아지는 밤이 오더라도, 우리는 그 텐트 안에서처럼 라면을 끓이고, 손전등을 천장에 걸고,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어 웃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아빠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삶의 기술이니까요.
이 자리를 빌려,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랜 세월 가게 문을 함께 지켜 주신 이웃 상인분들, 아빠를 믿고 일을 맡겨주신 단골 손님들, 주말마다 체육관에서 셔틀콕을 주워 주시던 동료들, 현상액 냄새가 밴 작업실에서도 늘 환하게 웃어 주시던 동네 아이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엄마와 누나, 우리 도현이. 우리 모두가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내어 이 빈자리를 메워 나가면, 아빠가 말한 그 “함께 잘 되는 길” 위에서 다시 단단해질 수 있을 겁니다.
아빠, 이제 저는 알아요. 당신이 남긴 것은 인쇄물에 찍힌 글자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손길이 스쳐 간 전단과 안내책자, 사진과 명함들 사이사이에, 당신의 목소리와 원칙, 그리고 이웃을 향한 마음이 박혀 있습니다. 그 인쇄물처럼, 당신의 삶도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우리가 넘겨 읽을 수 있는 페이지가 되었고, 다음 장을 쓰라고 등을 떠미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아빠, 고맙습니다. 저를 믿어 주어서, 가끔은 엄하게, 대부분은 다정하게. 약속을 지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실패에서 배움을 뽑아내는 법이 어떤 힘인지, 이웃과 함께 가는 길이 왜 더 멀리 가는 지름길인지, 당신이 보여 주었습니다. “밥은 먹었니?”라는 그 질문을, 이제는 우리가 서로에게 묻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고, 한 장 한 장 정성껏, 한 사람 한 사람 정답게 대하겠습니다. 그게 당신의 삶을 이어 쓰는 우리 식의 방식일 테니까요.
아빠, 사랑합니다. 부르던 대로 한 번 더 부를게요. 아빠, 준호 사장님. 오늘은 여기서 한 페이지를 덮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남긴 빛과 잉크, 웃음과 약속이 우리의 내일을 인쇄할 것입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는 함께 잘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