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력Chudosa에서 AI로 생성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여러분, 그리고 정희 어머니를 마음에 품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이정희, 우리에게는 정희 어머니로 기억될 한 사람의 삶을 기리고자 모였습니다. 슬픔을 나누는 시간인 동시에, 그분이 남긴 길과 빛을 함께 되새기는 자리입니다.
1962년 11월 2일 대구에서 태어나셨고, 올해 2월 3일, 향년 63세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의 생은 요란하지 않았지만 단단했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멀리까지 스며드는 향기 같은 생이었습니다.
저는 아들 한지훈입니다. 제게 어머니는 늘 제 편이 되어 주신 든든한 보호자였고, 삶과 신념을 가르쳐 주신 스승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아들로서, 그리고 어머니의 배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받은 사람으로서, 정희 어머니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젊은 날 대구를 떠나 상경하셨습니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고, 밤에는 강의실로 들어가 야간대를 다니셨지요. 졸업장 하나가 집안의 자랑거리였던 시절, 그 종이보다 더 빛났던 건 그 뒤에 겹겹이 쌓인 땀과 꾸준함이었습니다. 이후 중소기업의 회계팀장으로 일하시며 오랜 시간 숫자와 원칙을 다루셨습니다. 어머니에게 회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신뢰를 지키는 일, 청렴을 실천하는 자리였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정직해야 한다”던 말씀을, 저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퇴직 이후 어머니는 한 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삶의 반경을 넓히셨습니다. 마을 도서관에서 독서지도사로 봉사하시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셨고, 지역 아동 글쓰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로 세상을 기록하도록 도왔습니다. “기록하고 나누라”는 어머니의 평생 철학이 그 활동의 뼈대였습니다. 그 철학은 또 지역 청소년 장학회 설립에 참여하시며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말하셨습니다. “배움은 혼자 지키는 화분이 아니라, 자꾸 잘라 나눠 심어야 숲이 된다.”
가정에서는 배우자 한성호 아버지와 함께 묵묵히 서로를 지탱하셨습니다. 한 지붕 아래에서 어머니는 늘 검소했습니다. 물건을 사면 포장을 펴서 가지런히 접어 서랍에 넣었고, 장을 보면 영수증에 동그라미를 치며 가계부를 적었습니다. 그런 생활의 담백함 속에서 우리는 낭비 대신 서늘한 바람 같은 자족을 배웠습니다. 자녀인 저와 누나 한지수, 그리고 두 손주에게 어머니는 “많이 갖는 삶”보다 “분명히 나누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이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청렴하고 곧은 성품, 유머 감각 있는 현실주의자, 위기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사태를 정리하고,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사실을 정리한 뒤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우선 사정을 들어 보자”는 한마디면, 한참 어지럽던 방이 갑자기 환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순간, 단 한 마디의 농담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 낼 줄 아셨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친절을 놓치지 않는 태도, 어머니의 단단한 품격이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소중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어느 여름날, 집 앞 분식집에서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김밥 한 줄을 나눠 먹었습니다. 제 앞날이 막막하던 때였습니다. 젓가락 끝에서 김밥이 약간 미끄러졌고, 그걸 보시곤 어머니가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지훈아, 사람도 길도 젓가락처럼 미끄러질 때가 있다. 그래도 너는 네 길을 가라. 남의 박자에 맞추려고 애쓰다 보면 네 노래를 못 부른다.” 그날 비는 오래 내렸고, 어머니의 말은 길게 남았습니다. 그 한 그릇의 김밥과 그 한 문장이 제 인생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일상에는 작은 기쁨들이 질서 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의 조깅,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성가대 합창 연습, 식탁 끝에 놓인 크로스워드 퍼즐.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라디오 볼륨을 조금 줄이시고, 연필을 굴리며 중얼거리셨지요. “해답은 늘 어딘가에 있다. 다만 지금은 빈칸일 뿐.” 어머니에게 퍼즐은 오락이면서도 삶의 은유였습니다. 빈칸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모를 때는 찾아보고, 틀리면 고쳐 쓰는 태도. 회계장부에서, 가계부에서, 그리고 관계 속에서 어머니는 그 원칙을 한 치도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리워할 것들이 있습니다. 결정의 문턱에서 두려울 때, 한 장의 종이에 장단점과 순서를 적어 가며 길을 보여 주던 명확한 조언. 소풍과 시험, 출근길을 든든히 해 주던 장조림 도시락. 그리고 중요한 날이면 새벽에 도착하던 짧은 문자. “잘해라. 넌 할 수 있다.” 마침표 하나 정확히 찍힌 그 메시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손잡이였습니다. 저는 요즘도 가끔 새벽 전화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깨면, 어머니의 그 단출한 문장이 화면에 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어머니는 흔들리는 순간에도 목소리를 고르게 유지하셨습니다. 가족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크게 숨 쉬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부터 하자”며 순서를 정리해 주셨습니다. 위기 속에서 감정이 앞서 가면 쉽게 지친다는 걸, 어머니는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머니의 곁에서는 이상하게 두려움이 줄어들었습니다. 무너지는 대신 다시 세워 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유머도 잊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중요한 약속이 몰린 날, 성가대 연습에서 돌아오시며 “오늘 지휘자님이 박자를 네 등분 내라고 하셨는데, 너희 둘(저와 누나) 일정은 여덟 등분이더라. 그러니 먼저 쓸 것부터 쓰자” 하시며 웃으시던 모습. 웃음 뒤에는 늘 실천이 따라왔습니다. 그게 어머니의 방식이었습니다. 가볍게 말하고 무겁게 책임지는 방식.
어머니는 떠나시기 전에도 분명하셨습니다. 평소 원하던 대로, 꽃 장식 대신 장학기금에 기부해 달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보여 주기보다 남겨 주기를 택하신 마지막 결심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평생 쌓아 올린 가치는 늘 사람을 향해 있었습니다. 더 많이 배울 기회를, 더 넓게 적을 노트를, 더 따뜻하게 건넬 한 끼를 마련하는 일. 그렇게 누군가의 빈칸을 함께 채워 주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아버지 한성호 님께도 말씀드립니다. 오랜 세월 곁에서 서로를 반듯이 세워 오신 발걸음, 저희가 다 보며 배웠습니다. 서로 다를 때는 길을 맞춰 가고, 힘들 때는 어깨를 내어 주는 법을, 두 분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나 지수와 저는 그 모습을 가정과 일터에서 이어 가려 합니다. 손주들에게도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외할머니, 혹은 할머니는 “정직하게, 검소하게, 약자를 외면하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그리고 “기록하고 나누라”고 너른 목소리로 일러 주셨다고.
어머니의 자리를 어떻게 기릴 수 있을까요. 거창한 건 필요 없다고 하셨을 겁니다. 다만 매일의 언어를 조금 정확하게, 매일의 선택을 조금 정직하게, 매일의 마음을 조금 더 넉넉하게. 급히 판단하기 전에 먼저 사정을 들어 보고, 필요한 일의 순서를 정리하고, 그다음에 손부터 움직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배운 것을 기록하고 나누는 것. 어머니가 남긴 문장들은 거창하지 않지만 실천 가능한 문장들입니다. 우리가 그 문장들을 오늘부터 다시 큰 소리로 읽고, 작은 자리에서부터 적용한다면, 어머니는 우리 곁에서 계속 일하실 것입니다.
저는 때로 생각합니다. 그 장맛비 내리던 날, 분식집 유리창을 두드리던 빗방울처럼 우리의 슬픔도 한동안은 유리창을 두드리겠지요. 그러나 빗줄기는 언젠가 잦아들고, 창에는 물자국이 남습니다. 그 자국은 얼룩이 아니라 흔적입니다. 살아 내고 사랑한 사람의 흔적. 어머니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은 분명하고도 따뜻합니다. 새벽 문자의 마침표처럼 또렷하고, 장조림의 짭조름함처럼 오래가는 힘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정희 어머니를 떠나보냅니다. 그러나 떠나는 것은 어머니의 숨뿐, 어머니의 뜻과 습관과 온기는 우리 일상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고단할 때 라디오를 조금 줄이고 빈칸을 다시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두려울 때 깊게 숨을 들이켜고 첫 번째 일을 먼저 하는 태도로, 누군가의 손에 작은 장학금 봉투 하나를 조심히 쥐여 주는 손길로, 우리는 어머니를 다시 만날 것입니다.
어머니,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저와 지수, 그리고 손주들은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대로 살겠습니다. 남의 박자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노래를 분명한 음정으로 부르겠습니다. 숫자처럼 분명하고, 성가처럼 따뜻하게, 아침 조깅처럼 꾸준하게, 크로스워드처럼 지혜롭게 살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날이면, 우리도 서로에게 짧은 문자를 보내겠습니다. “잘해라. 넌 할 수 있다.” 그 말로 서로를 세우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이제 편히 쉬소서. 당신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웠고, 당신의 가르침은 여전히 현재형입니다. 남겨진 우리가 그 현재형을 미래형으로 이어 가겠습니다. 꽃 대신 장학기금으로 모인 마음들이 또 다른 아이들의 빈칸을 채울 것이고, 그 아이들이 쓴 문장 속에서, 나눔의 장부 속에서, 새벽의 운동장과 합창의 화음 속에서, 어머니는 오래도록 살아 계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어머니, 저희는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남겨 주신 길 위에서, 당신이 믿어 주신 그 길 위에서, 우리가 우리답게 걸어가겠습니다.